‘코드기어스 반역의 를르슈’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 를루슈가 자신을 악으로 규정하고 전 인류의 증오를 모은 뒤, 그 목숨으로 새로운 평화를 이끄는 장대한 서사의 완결이다. 치밀한 계획과 비극적인 희생, 그리고 그가 남긴 진정한 평화의 메시지는 수많은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완벽한 계획의 서막
‘코드기어스 반역의 를르슈’는 단순한 로봇 전쟁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인간 심리와 정치, 권력, 정의의 개념을 뒤흔드는 복합적인 서사 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그 중심에는 주인공 를루슈 람페르지가 있다. 그는 브리타니아 제국의 황자이자 동시에 그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반역자 ‘제로’로서 이중생활을 하며, ‘기어스’라는 절대적인 능력을 무기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한다. 이야기의 말미에 이르러 그는 마지막으로 ‘제로 레퀴엠’이라는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자신을 전 인류의 공적이자 절대악으로 만들어, 자신의 죽음을 통해 증오와 분열을 종식시키는 극단적인 작전이다. 를루슈의 계획은 단순히 전략적 판단이나 이타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치밀한 지성과 냉정한 판단력을 지닌 인물이지만, 동시에 감정에 흔들리는 인간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냉혹한 군주로서의 모습을 강화해 나가는 과정은 시청자에게도 불편함과 긴장감을 안긴다. 그는 친구와 가족, 동료들을 속이며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고, 스스로가 가장 증오받는 존재로 변모해 간다. 이 모든 것이 최후의 ‘계획’을 위한 과정이었음을 마지막 장면에서야 우리는 명확히 알게 된다. 그의 계획은 허점이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루즈하게 짜인 복수극이 아니라, 세계 구조 자체를 재편하기 위한 하나의 정치적 프로젝트로서의 무게감을 지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단 하나의 희생이 있었다. 자신이라는 존재의 말소. 를루슈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인류에게 증오를 종식시킬 수 있는 단일한 희생양을 제공하려 했으며, 그것은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산하고 감당하려 한 유일한 결말이었다.
모든 것을 건 희생
‘제로 레퀴엠’의 실현은 를르슈 혼자만의 결단이 아니라, 스자쿠를 비롯한 몇몇 인물들과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스자쿠는 를루슈의 계획을 완성하는 최후의 칼날로서, ‘제로’의 가면을 쓰고 그를 찌른다. 이 장면은 단지 한 사람의 죽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말소하는 의식이자, 신화적 희생의 상징이다. 를루슈는 자신이 만든 ‘제로’라는 영웅의 가면을 친구에게 넘기고, 자신은 최악의 독재자로 죽는다. 이로써 악은 사라지고, 선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희생은 를루슈의 인간적 내면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는 애초에 여동생 나나리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단순한 가족애를 넘어서, 세계 전체의 운명을 감당해야 하는 위치로 확장된다. 그리고 결국 그는 나나리에게조차 자신의 진심을 숨긴 채 죽음을 맞이한다. 그 순간, 나나리가 진실을 깨닫고 오열하는 장면은 시청자에게 참을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다’는 를르슈의 선택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를르슈의 죽음은 그 자체로 평화의 단초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논쟁을 낳았다. 그는 독재자였다. 민간인을 희생시키고, 거짓말을 일삼았으며, 권력을 독점했다. 그러나 그 모든 악행은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는 세계를 통합하고 증오를 분산시켰다. 이 점에서 를루슈는 전통적인 의미의 ‘영웅’도, ‘악당’도 아닌, 고전 비극의 주인공과 같은 존재로 평가받는다. 그는 잘못된 방법으로 올바른 목적을 추구했으며, 결국 그 대가를 온전히 자신이 감당함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했다. 결국 이 희생은 ‘누가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답을 제시한 선택이었다.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를르슈는 감당했고, 그것이 그를 ‘위대한 악’으로 만든 이유다.
죽음이 남긴 평화
를르슈의 죽음 이후, 세계는 눈에 띄게 달라진다. 브리타니아 제국은 해체되고, 민중은 전제정에서 해방된다. 각국은 협력체제를 갖추기 시작하며, 세계는 오랜 전쟁과 폭력의 시대에서 새로운 평화의 시대로 이행한다. 이 변화는 단순히 제도적 개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를루슈라는 하나의 상징적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가능해진 결과이다. 그가 모든 증오를 자신에게 집중시킴으로써, 인류는 더 이상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지 않게 되었다. 여기서 ‘평화’란 단순한 무력 충돌의 종식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적, 심리적 치유의 과정을 포함한다. 를루슈는 전 세계인의 감정을 조율하고, 증오의 방향을 의도적으로 설계했다. 그것이 그가 만들어낸 가장 무서운 전략이며, 동시에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이 평화는 어떤 이상이나 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피와 눈물과 계산의 결과로 탄생한 현실이다. 그렇기에 이 결말은 단순히 해피엔딩이라 부를 수 없다.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을 필요로 했던 평화’이며, 시청자에게 끊임없이 도덕적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런 평화가 정당한가?”, “이러한 희생이 필요한가?”라는 물음은 작품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남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질문을 던지게 만든 힘이 바로 를루슈의 선택과 죽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코드기어스’의 마지막 장면은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를루슈가 진정 옳았는지, 혹은 그는 결국 괴물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 각자에게 맡겨진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방식이 세계에 영향을 주었고, 평화를 남겼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를루슈의 최후는 단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의 시대를 닫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서사적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