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인절비트(Angel Beats!)’의 초반부에서 등장하는 밴드 멤버 이와사와 마사미의 연주는,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강한 인상을 남긴 명장면이다. 그녀가 음악을 통해 고독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하고, 연주 후 미소와 함께 소멸하는 장면은 시청자에게 오랜 여운을 남긴다.
고독을 품은 과거의 흔적
‘에인절비트’는 사후 세계를 배경으로, 생전의 미련을 남긴 영혼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밴드 ‘Girls Dead Monster’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인 이와사와 마사미의 이야기는 짧지만 묵직하다. 그녀는 등장하자마자 음악에 모든 것을 건 듯한 태도를 보이며, 학교 내 전투조직인 SSS의 요원들과도 거리를 둔 채 독자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와사와는 말수가 적고 감정 표현에 인색하지만, 그 속엔 고독한 과거와 억눌린 감정이 응축되어 있다. 그녀의 생전 이야기는 매우 짧게 소개된다. 가정폭력과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이와사와는 음악이라는 유일한 탈출구를 통해 자신의 삶을 표현해 왔다. 그러나 그녀가 진심으로 음악에 몰입한 순간, 불의의 사고로 뇌 손상을 입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처럼 ‘음악’은 그녀에게 단지 취미가 아닌,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절박한 자기표현의 수단이었다. 이와사와는 사후 세계에서도 이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간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그녀가 연습이나 공연을 할 때 외에는 거의 말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그녀가 타인과의 교류보다는 내면의 울림, 즉 음악이라는 언어로만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성향을 드러낸다. 고독이라는 감정은 이와사와에게 고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자기 성찰의 결과이며, 그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향한 갈망이 서서히 자리 잡는다. 이와사와의 고독은 연민의 대상이 아닌, 음악이라는 방식으로 극복될 수 있는 감정의 본질이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진실한 감정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말이 아닌 연주로 풀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녀의 고독은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연결을 위한 서곡이었다.
해방을 향한 한 곡의 연주
이와사와의 각성은 SSS가 전투 중 소란을 피우기 위해 밴드를 활용하던 순간 발생한다. 이 장면에서 이와사와는 기존의 단순한 음악 연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진심이 담긴 곡 ‘My Song’을 솔로로 부르게 된다. 이 장면은 사운드와 연출, 캐릭터 감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명장면으로, 그녀가 진심으로 음악에 몰입할 때 얼마나 자유로워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기타를 손에 쥐고 무대 위에 선다. 조명이 꺼진 강당, 적막 속에서 시작된 기타 선율은 시청자의 감정선마저 이끌어간다. 이와사와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단단하고, 담담하면서도 울림이 있다. 그녀는 곡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억눌린 감정을 마침내 해방시킨다. 가사와 음색, 그리고 그녀의 눈빛 속에는 ‘이제는 괜찮다’는 확신과 평온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그녀가 곡이 끝남과 동시에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장면이다. 그녀는 연주가 끝나자 조용히 미소 짓고, 빛 속으로 사라진다. 이 연출은 상징적이다. 그것은 단지 ‘소멸’이 아닌, 그녀가 자신의 미련을 내려놓고 사후 세계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표현한 것이다. 그녀는 단 한 곡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드러냈으며, 그걸로 충분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캐릭터의 퇴장이 아니라, 음악을 통한 정화와 완성의 의식을 보여준다. 이와사와는 더 이상 이 세계에 미련을 두지 않고, 연주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긍정하고 자유롭게 된다. 이처럼 그녀의 해방은 폭력적인 전투나 눈물겨운 대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진심 어린 연주라는 가장 순수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짧지만 긴 여운
이와사와의 퇴장은 ‘에인절비트’에서 가장 짧고 조용한 순간 중 하나지만, 그 여운은 가장 길고 깊다. 그녀가 남긴 노래, 표정, 그리고 사라지는 뒷모습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서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시청자는 그녀가 왜 음악을 했는지, 왜 단 한 곡으로도 구원이 가능했는지를 되묻게 된다. 이는 곧, 삶이 길이보다 밀도에 의해 측정된다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에인절비트’는 각 인물의 미련을 해소시키는 구조를 띠고 있지만, 이와사와의 사례는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완결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녀는 과거를 미화하지도, 다른 이에게 기대지도 않는다. 단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온전히 실행했으며,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와 같은 태도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단지 슬픔이나 상실의 공간이 아닌, 해방의 장소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또한 이 장면은 시청자에게도 내면의 해방을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고 싶은 일을 미루며 살고 있는가, 혹은 누군가에게 진심을 표현하지 못한 채 침묵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와사와는 그런 후회의 순간을 남기지 않기 위해, 죽음 이후의 순간에도 가장 순수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그녀는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았고, 경쟁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연주했을 뿐이다. 이 장면이 남긴 여운은 단순한 감정의 잔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질문하는 울림이다. 이와사와는 퇴장했지만, 그녀의 노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울리고 있다.